2008.10.29
지난 2주 동안 한국에서 온 DBU의 특별한 손님들을 모시는 일이 있었다. 특별히 Honorary Doctorate Convocation 명예박사 수여식을 위하여 방문한 이 손님들은 한국의 유명한 큰 교회에서 오셨는데 그 구성원들이 각 업계의 CEO와 국회의원, 그리고 중요 리더들로 이루어진 VIP 그룹이었다. 약 3개월 동안 준비하고 2주간 일을 진행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다.

지난주 목요일에 모든 손님들이 돌아가고 바로 이어지는 수업과 교회 사역으로 쉬지 못한 채 새 한 주를 맞게 되었다. 입술의 물집은 쉬지 않고 돌아가면서 터지고, 주일 저녁에 미션 컨퍼런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내 특기인 죽음의(?) 졸음운전으로 달렸다. 하지만, 감사했다.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은 없어도, 아버지의 공급 하심으로 날마다 부족함 없이 살아가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곳에서 작게나마 쓰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월요일 아침, 6시가 넘어서 눈을 떴다. 보통은 일을 8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1시간 정도 일찍 가서 기도하고 하루를 준비하는데, 오늘은 피곤해서 그냥 8시에 맞춰가려고 시계를 맞추었었다. 그런데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일어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계속하기를 원하시나 보다 하는 생각으로 준비해서 출근했다.

점심에는 International Noon Day가 있었다. 찬양인도를 부탁해와서 Everlasting God, As the Deer 이렇게 두 곡을 준비했다. 그런데 아침에 기도하다가 As the Deer (목마른 사슴)을 다른 언어로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침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부탁해서 중국어, 일본어를 잠시 배웠다. 중국어는 참 어려웠다. 그래도 결국에는 각 언어로 불러줄 수 있었고, 미흡하나마 모국어로 전달된 찬양이 그들의 영혼에 작은 씨앗이 되길 기도했다.

오후에 돌아와서 Mrs. Brown과 이번 주의 일을 위해 이야기를 했는데, 지난 2주간의 내 스케줄을 보시더니 이번 주에는 그냥 쉬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2주간 새벽부터 밤까지 팀들과 같이 움직이느라 업무시간을 초과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터내셔널 오피스의 일을 위해서라도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도, 법에 따라 정해진 시간을 준수하는 것이 옳다며 그냥 쉬라고 하셨다.

오후 업무를 마치고 5시부터 있던 수업이 끝나고 나니 8시였다. 운동하러 Gym에 들렀다. 잠깐 몸을 푸는데 내 입술을 보고 일단 오늘은 가볍게 뛰기만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조깅하고 나오니 온몸이 피곤했다. 나는 왜 이리도 내 몸의 상태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걸까. 잠시 은행에 들러 입금하고 집에 오는데, 집에 먹을 게 없다는 게 떠올랐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가, 오늘은 맛있는 거 사먹자고 결심하고 집 근처의 홍콩 마켓에서pho 쌀국수를 먹었다. 맛있었다. 내일 일을 안 가도 된다니 마음이 편했다. 그래 내일은 실컷 늦잠을 자자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미진씨의 전화에 깼다. 아침 11시였다. 머리가 무겁고 코도 막히고 몸이 안 좋았다. 미진씨의 목소리에 다시 잠들어 2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조금 몸이 나아진 것 같았다.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이번 주에 할 일들이 생각났다. 지난 2 주동안 밀린 과제와 페이퍼, 그리고 이번 주와 다음주에 있을 시험들이 떠올랐다. 이번 주에 off가 없었으면 큰 일 날뻔 했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했다. 그 동안 계속해서 미뤄지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아예 리스트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내 삶이 어느 순간부터 task 업무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말씀을 폈다. 그리고 잠시 기도하다가 마음을 먹었다. 오늘은 쉬자.

배가 고팠다. 부엌에 갔다. 한 번 밥할 분량의 쌀이 남아있었고, 냉장고에 김치가 조금 남아 있다. 찬장을 열어보니 참치 2캔이 있었다. 마지막 남은 이것들로 뭘 해먹을까 하다가 참치 김치찌개를 끓여먹기로 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참치 된장 김치찌개가 있다. 김치찌개에 된장을?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거 좋아하는 기질이 발동해서 도전해보기로 했다. 부엌을 정돈하고 밥을 하고 찌개를 끓였다. 빨래 정리 방정리도 해야하는데 말이지.

찌개와 밥, 그리고 무말랭이와 오징어 젓갈, 있는 것 다 동원했다. 이제 남은 것은 없다.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감사 기도를 드리고 기대에 부풀어 찌개를 한 숟갈 입에 넣었는데, 아뿔싸. 실패다. 마지막 남은 거였는데.

오랫만에 갑자기 주어진 쉬는 시간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질주하는 동안 주변 경관을 볼 수 없듯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일들 가운데서는 주변을 돌아보고 내면을 살피는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쉬는 시간이 주어지자 여유를 갖고 삶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다. 내 삶이 해야하는 일들의 목록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쉬는 시간마저 그 완수하지 못한 목록들을 처리하는 보완책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슬프지만 감사했다.

노는 것을 좋아해서, 풀어지면 한없이 풀어지는 내 자신의 기질을 경계하다 보니 쉬는 시간이 주어져도 잘 쉬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쉼 또한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그러고 보니 어느새 입술의 물집이 가라앉았네. 이제는 입술에 무엇이 나지 않도록 잘 쉬기를 노력해야겠다.
List of Articles

그녀가 떠나다 imagefile

  • Jun 25, 2009

당신의 모습이 게이트로 사라진 뒤, 난 한참을 그 자리에서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대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생각에 차마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온갖 어려움 끝에 온 그대를 보고 익숙한 듯이 별 요동없는 내 감정을 보며 약간 당황스럽기까지 했는데 지금 당신이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은 내 잃었던 반쪽이 함께 함에서 온 자연스러운 안정감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공항을 혼자 나오며 남겨진 느낌에 어찌할 수 없는 흐느낌이 터졌습니다. 당신과 함게 할 때 그토록 눈부시던 햇살이 이젠 그...

한 사람을 위한 작은 음악회 - To Where You Are imagemoviefile [1]

  • Nov 06, 2008

미진씨의 생일이 다가왔다. 우리는 미진씨 생일 다음 날에 교제를 시작했기 때문에 기억에 약한 나로서 고맙기는 하지만 생일과 기념일을 동시에 커버할만 한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은근한 압박도 만만찮다. 돈은 없고, 특별한 선물을 주고는 싶고.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이번에 교회에서 새로 장만한 HD캠코더로 노래 하나를 찍어주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교회에 사람이 없을 것 같은 평일 밤, 지친 몸을 이끌고 교회로 향했다. 피곤해서인지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구슬리며 워밍업하면서 열심히...

돈의 훈련

  • Nov 04, 2008

창세기 12장 1-3절 말씀은 미국으로 떠나도록 받았던 말씀 중 하나다.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 말씀에 순종해서 미국에 왔고 그 말씀을 믿고 모든 것을 떠나 살아왔지만, 한 가지 나를 붙잡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돈이었다. 부모님을 떠났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의지해왔기 때문이다. 늘 이를 위해서 기도해오다가, 이번 여름에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부모님과 기도하고 이제 경제적으로 독립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DBU에서 일을 시작...

  • Oct 29, 2008

지난 2주 동안 한국에서 온 DBU의 특별한 손님들을 모시는 일이 있었다. 특별히 Honorary Doctorate Convocation 명예박사 수여식을 위하여 방문한 이 손님들은 한국의 유명한 큰 교회에서 오셨는데 그 구성원들이 각 업계의 CEO와 국회의원, 그리고 중요 리더들로 이루어진 VIP 그룹이었다. 약 3개월 동안 준비하고 2주간 일을 진행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다. 지난주 목요일에 모든 손님들이 돌아가고 바로 이어지는 수업과 교회 사역으로 쉬지 못한 채 새 한 주를 맞게 되었다. 입...

기록 남기기

  • Oct 06, 2008

작년에 시작한 요단강을 건너다 시리즈를 마무리지으려 모처럼 시간을 내 워드프로그램을 열었다. 그러자 남기지 못한 지난 이야기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최근의 일은 고사하고, 코멘트도 달지 못한 사진첩의 사진들, 동부 여행, 페루에 다녀온 것 부터 상준형의 프로포즈, 작별, 샌프란시스코 여행, 체로키 미션트립, 한국 여행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잊었다. 그 수많은 기쁨과 슬픔들, 교훈과 가르침들, 영감과 아이디어들은 기억에서 사라졌고, 무엇보다 그 순간들의 하나님과 사랑하는 이들의...

반찬을 사다 [1]

  • Oct 01, 2008

아침에 일어났더니 윗입술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내 몸은 피곤할 때면 입술 주변의 피부에 수포가 생기는 특징이 있다. 미진 씨의 의학적인 설명에 따르면 이 증상은 Herpes Simplex I 이라는 바이러스가 그 이유라고 한다. 이 바이러스는 몸속의 신경절에 상주하다가 몸의 면역상태가 좋지 않을 때 이런 식의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내 몸의 상태가 어떤지에 둔한 나로서는 이 특징이 마치 경고등과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유익한 부분도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 입술에 잡힌 물집은 이전과 다르다. 보통...

나브라지가 예수님을 영접하다 imagefile [2]

  • Aug 18, 2008

 2주전에 이사를 했다. Wymberly 윔벌리라는 DBU의 off-campus 아파트로 들어왔다. 이곳에는 대부분 DBU의 International Students 국제 학생들이 모여산다.내 룸페이트는 우즈베키스탄출신의 마사드, 다른 방에는 타이완 친구 핑과 네팔 친구 나브라지가 산다. 사실은 이사를 위해서 거의 CFNI의 Alumni 졸업생 아파트로 들어가는 것으로 거의 생각을 정했었다. 그리고 마지막 결정을 지으려던 날 새벽기도에서 아버지 어디로 갈까요 기도했다. 그런데 그날 목사님께서 선교에 대한 말씀을 하셨고, 이어 기도하는데 R.O...

꿈 - Paul Potts 그리고 인순이 movie

  • Apr 30, 2008

아침에 음악을 듣다가 문득 인순이와 Paul Potts 폴 팟츠가 생각났다. 처음 Paul Potts 를 만난 것은 작년 그냥 쉬면서 웹서핑 중에 접한 youtube 동영상을 통해서였다. 그 동영상은 미국에서 인기가 좋은 American Idol의 영국 버전Britain's Got Talent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특별한 장기를 가진 일반인들이 예선을 거쳐 선택되면 본선에 진출하고, 몇 차례의 공연을 통해 전문 심사위원을 거쳐서 결승에서 우승하면 여왕 앞에서 공연하게 된다고 했다. 무대에 올라온 폴의 첫인상은 정말 볼품이...

피아노 그리고 자전거

  • Apr 23, 2008

문득 엄마의 손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어느 날 어머니와 교회에 갔었다. 교회의 지하에는 작은 예배실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낡은 피아노가 있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엇인가를 함께 기다리는 중이었고, 어머니는 피아노 앞에 다가가시더니 그 앞에 앉으셨다. 마치 소중한 것을 추억하시듯 천천히 피아노를 만지시던 어머니. 그리고 나는 처음 들었다. 어머니 손끝에서 흘러나오던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중간 중간 기억을 더듬는 흔적에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처...

Japan Night imagefile [3]

  • Apr 14, 2008

달라스에서 남쪽으로 2시간 정도 내려가면 Waco 웨이코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조지부시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한 이 곳에는 Baylor University 베일러 대학이 있는데, 이 곳에서 지난 금요일에 북한을 위한 금식기도회가 있었다. 몇몇 Youth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지만, 여건상 못갈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저찌하여 결국은 차전도사님께 밴을 빌려서 아이들 7명을 데리고 다녀오게 되었다. 금요일 오후 교통체증이 심한터라 아이들을 픽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그래서 결국...